국내 대학들이 생성형 AI를 단순히 ‘도구’로 활용하는 초기 단계를 넘어, 교육 과정 전반을 재설계하는 본격적인 융합 단계에 진입했다.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가천대 등 주요 대학들은 전공별 특화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평가 체계를 ‘결과물’에서 ‘사고 과정’으로 전환하며, AI 윤리 교육을 필수화하는 등 다각도로 대응에 나섰다.

■ ‘AI는 조수, 인간은 감독’… 전공별 하이브리드 워크플로우 정착

예술 계열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감지됐다. 서울대 동양화과는 올해부터 ‘통합매체3’ 수업에서 ‘AI 하이브리드 워크플로우’를 도입했다. 학생들은 먼저 손으로 아이디어를 스케치한 뒤, AI 이미지 생성 도구로 여러 변주를 만들어보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다시 수묵이나 채색 기법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담당 교수는 “AI가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참고 자료나 밑그림으로 삼아 전통 매체의 물성을 살리는 작업이 핵심”이라며 “학생들이 AI의 ‘평면성’과 전통 기법의 ‘물질성’ 차이를 체감하면서 자신만의 표현 언어를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문학 창작 분야도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 성균관대 국문과는 ‘창작 추론’ 수업에서 특정 작가(이상, 박완서 등)의 문체를 AI에 학습시킨 뒤, ‘2026년의 서울’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생성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이 출력물을 읽고 비평한 뒤, 인간 작가의 관점에서 개작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는 ‘게임개발프로세스’ 수업을 통해 학생마다 자신의 연구 주제를 설정하여 AI를 통해 탐색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관련 연구를 스스로 마무리하도록 한다. 코딩 AI, 생성형 AI, AI를 통한 QA 프로세스 정립, AI를 바탕으로한 게임 커뮤니티 의견 수집과 분석 등 학생들은 자신마다의 전문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설계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혀나가고 있다.

■ 비즈니스 외국어는 ‘AI 바이어’와 실전 협상

실용 어학 분야는 AI를 ‘가상의 대화 상대’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려대 중문과는 비즈니스 중국어 수업에서 AI를 광둥성 전자제품 바이어로 설정하고, 학생들이 한국 수출업체 담당자 역할을 맡아 협상하는 롤플레잉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학생이 ‘您’ 대신 ‘你’를 사용하거나, 과도하게 겸양 표현을 쓰면 즉각 피드백을 제공한다. 한 수강생은 “교재 속 고정된 대화문을 외우는 것과 달리, 내 답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니 훨씬 긴장감 있고 실전 같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중문과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역번역 디버깅’ 방식을 도입했다. 학생들은 한국어 문장을 AI로 중국어로 번역한 뒤, 이를 다시 일본어로, 최종적으로 한국어로 역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다”가 “한강은 서울의 우유 파이프입니다”로 왜곡되는 지점을 찾아내며, 직역의 한계와 문화적 맥락 손실 문제를 학습한다.

더하여 게임 번역의 경우에도 현지 감성과 정서를 고려한 LQA(Linguistic Quality Assurance)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최근 AI툴을 이용한 번역의 경우 속도와 퀄리티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 평가 혁명: ‘무엇을 만들었나’보다 ‘어떻게 생각했나’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품질이 상향평준화돼 변별력이 낮다는 판단 아래, 대학들은 평가 기준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프롬프트 로그 제출’ 의무화다.

연세대 경영학과는 이번 학기부터 모든 AI 활용 과제에 ‘사고 과정 기록’을 첨부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AI와 나눈 전체 대화 기록을 제출하고, 각 질문을 어떻게 수정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1차 출력물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구체적 사례 3가지 포함’이라는 조건을 추가했습니다”와 같은 방식이다.

‘AI 기여도 명시제’도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은 과제 제출 시 ‘인간 70%, AI 30%’처럼 기여도를 표기하고, AI가 수행한 구체적 역할(참고문헌 요약, 영문 초록 작성, 맞춤법 교정 등)을 명시해야 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관계자는 “이 방식이 도입된 이후 표절 논란이 크게 줄었다”며 “학생들도 AI를 ‘부정행위 도구’가 아닌 ‘정당한 조력자’로 인식하게 됐다”고 전했다.

구술 면담도 강화됐다. 서울대 인문대는 리포트 제출 후 1주일 이내에 교수와 10~15분 1:1 면담을 진행한다. 학생이 자신의 논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재작성 기회를 주거나 감점한다. 한 교수는 “AI가 쓴 문장을 암기한 학생과 내용을 소화해서 자기 언어로 재구성한 학생은 5분이면 구분된다”고 말했다.

■ 인프라 투자 경쟁… GPU 서버부터 AI 융합 교수까지

대학들은 제도적 인프라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대와 KAIST는 학내 전용 LLM(거대언어모델) 서버를 구축해 학생들에게 유료 모델급 성능을 무료로 제공한다. 학생 1인당 월 10만 토큰까지 사용할 수 있어, ChatGPT Plus 구독료 부담을 덜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오픈소스 모델(Llama, Mistral 등)을 전공별로 파인튜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법학과용 판례 분석 특화 모델, 의학과용 논문 요약 모델 등이 개발되고 있다.

인력 측면에서는 ‘AI 융합 전담 교원’ 채용이 늘고 있다. 교육부는 2026년 신규 임용의 30% 이상을 AI 융합 역량 보유자로 선발하도록 권고했다. 전공 분야 석사 이상 학위와 AI 관련 자격증을 모두 갖추거나, 전공 박사 학위와 AI 활용 교육 경력 2년 이상을 요구한다.

▸ 주요 대학 AI 인프라 구축 현황

구분세부 내용선도 대학
GPU 서버학내 전용 LLM 서버 운영, 학생당 월 10만 토큰 무료 제공서울대, KAIST
AI 융합 교원2026년 신규 임용의 30% 이상, 전공+AI 역량 보유자전국 주요대
윤리 상담 기구디지털 리터러시 센터 운영, 저작권·윤리 상담연세대, 성균관대

■ AI 윤리 교육 필수화… “저작권 침해 여부 사전 검토”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윤리 교육도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세대는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2학점짜리 ‘AI 윤리’ 교양 과목을 필수 이수하도록 했다. 8주 과정으로 편성된 이 과목은 AI 학습 데이터 구조 이해부터 저작권 침해 사례 분석, 편향된 AI의 사회적 영향, 책임 있는 AI 활용 실습까지 다룬다.

특히 저작권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학들은 AI 생성물의 저작권이 학생에게 귀속되려면 ‘창의적 기여도 입증’ ‘실질적 변형(30% 이상 수정)’ ‘최종 책임’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성균관대 디지털 리터러시 센터는 학생들이 AI 학습에 사용하려는 데이터가 저작권법을 위반하는지 사전 검토해준다. 센터 관계자는 “Getty Images vs Stability AI 소송처럼 해외에서는 이미 AI 저작권 분쟁이 본격화됐다”며 “학생들이 법적 리스크를 인지하고 CCL 라이선스 데이터만 사용하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AI 시대 교육, 정답 찾기보다 질문하는 법 가르쳐야”

교육학계의 또 다른 시각들은 이번 변화를 ‘평가 패러다임의 대전환’으로 보고 있다. AI가 보편화되면서 객관식 시험이나 정형화된 에세이는 이미 변별력을 잃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학들이 AI사용에 대한 프롬프트 로그 제출, 구술 면담 등으로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평가에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다만 교수진의 역량 격차가 오히려 과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은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고있지만 정작 교수 중 상당수는 프롬프트 작성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AI 격차 해소 또한 시급한 과제다. 한 사립대 학생처장은 “경제적 이유로 유료 AI 도구를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학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AI 융합 교육이 ‘교육 양극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전공별 AI 활용 시나리오 심층 분석

1.1 예술 계열: AI 하이브리드 워크플로우

핵심 개념: AI를 최종 결과물 생성 도구가 아닌 ‘창작 과정의 매개체’로 재정의

사례 1: 서울대 동양화과 – 전통 매체와 AI의 융합

  • 워크플로우 구조
    1. 인간 주도 아이디어 스케치 (개념 설정 단계)
    2. AI 이미지 생성을 통한 시각적 변주 탐색
    3. 수묵/채색 등 전통 기법으로 물성(物性) 구현
    4. AI 보정 도구를 활용한 최종 디테일 조정
  • 교육적 의의: 학생들이 AI 출력물의 ‘평면성’과 전통 매체의 ‘물질성’ 차이를 체감하며, 기술과 감성의 균형점을 찾는 메타인지 능력 향상

사례 2: 성균관대 국문과 – 문체 모방을 통한 창작 비평 능력 배양

  • 3단계 학습 프로세스
    1. 데이터 큐레이션: 특정 작가의 대표작 5~10편을 AI에 학습시키기 (저작권 검토 병행)
    2. 생성 실험: 동일 주제(‘2026년 서울’)를 이상·박완서 문체로 각각 생성
    3. 비평적 개작: AI 출력물의 어색한 표현, 시대적 맥락 오류 등을 찾아 수정하며 작가론 심화
  • 평가 기준: 단순 모방이 아닌, 원작가의 문법을 분석한 ‘메타적 해설’ 제출 여부

1.2 어문·실무 계열: AI 협업 리터러시

사례 3: 고려대 중문과 – 롤플레잉 기반 비즈니스 중국어

  • 시뮬레이션 설계
    • AI를 ‘중국 바이어’ 페르소나로 설정 (지역: 광둥성, 업종: 전자제품 수입)
    • 학생은 ‘한국 수출업체 담당자’ 역할로 협상 수행
    • 실시간 피드백: 부적절한 호칭(你 vs 您), 과도한 겸양 표현 등 즉각 지적
  • 기존 교육과의 차별점: 교재 속 고정된 대화문이 아닌, 학생의 응답에 따라 변화하는 동적 상황 대응 능력 훈련

사례 4: 성균관대 중문과 – 역번역을 통한 언어학적 사고력 강화

  • 디버깅 학습법
    1. 한국어 원문 작성 (예: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다”)
    2. AI 중국어 번역 → AI 일본어 번역 → 한국어 역번역
    3. 최종 결과물 분석: “한강은 서울의 우유 파이프입니다” 같은 왜곡 발생 원인 규명 (직역의 한계, 문화적 맥락 손실 등)
  • 교육 효과: 번역의 본질이 ‘단어 치환’이 아닌 ‘의미 재구성’임을 체득

대학가의 AI 융합 교육은 이제 시작 단계다. 2027년까지 대부분의 대학이 AI 활용을 ‘선택’이 아닌 ‘기본’으로 삼는 커리큘럼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계는 이 과정에서 기술 도입에만 집중하지 말고,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이라는 교육 본질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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