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게임 개발자로써 게임 업계에 30년 넘게 종사해왔고, 더불어 대학 교수라는 직업도 가지고 있는 바 주변 지인들로부터 자녀에 대한 게임 쪽 진학 또는 진로에 대한 상담을 자주 요청 받는 편입니다.

게임 개발자가 꿈이라며 먼 지방에서 인천의 트리거소프트(90년대)까지 직접 찾아왔던 학생부터, 코딩 혹은 개발에는 전혀 무지하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던 취준생들까지… 이루 셀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은 감사하게도 대부분 게임 업계의 어엿한 개발자로 잘 자리를 잡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멋진 작품들을 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멘토’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은 게임 쪽 진학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 부모님을 대상으로 한 기초적이고 공통적인 조언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물론 조언이라는 것은 대상자의 배경과 지식,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되므로 참고만 바랍니다.)

고민 1: 우리 아이가 게임을 좋아해요! 게임 개발자가 꿈이라고 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코딩 열풍과 함께 네이버, 카카오 등 IT/게임 직군의 급격한 연봉 상승, 플렉서블한 업무 환경, 수준 높은 복지 등으로 인해 많은 학생 그리고 부모님들이 게임 회사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고 그에 따른 관심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게임 플레이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즐기는 것과 만드는 것은 분명 분야가 다른 일입니다. 그와 함께, 어떠한 취미건 직업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즐기기 어렵게 되는 나름의 진리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업의 게임 개발자들 역시 대부분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개발을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때문에 게임에 대한 자녀의 호감이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게임 기획, 그래픽, 프로그래밍 등 게임 개발에 대한 기초 소양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꾸준히 지식을 쌓은 뒤 관련 학과의 진학으로 이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1단계: 어떤 활동이던 아이의 꾸준한 노력과 활동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세요.

저 역시 한 아이의 부모이지만 제 아이를 쉽게 규정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고, 어떤 일이던 포기하지 않는 아이 스스로의 꾸준한 노력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 안에서 아이에게 보다 좋은 진로를 만들어 주고, 더 번듯한 트랙에 올려두기 위해 치열하고 집요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 그 어떤 주어진 재능도 아이에게 내재된 스스로의 동기가 사라지게 되는 순간 열정도 함께 사라지게 되고, 치열한 경쟁으로만 점철된 그룹 안에서 아이는 타인이 가진 천재성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고 포기하게 됩니다.

아이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게임 개발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면 우선 부모는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그 분야를 인정하고, 응원하며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성공을 위한 빠른 지름길을 강요하기보다 코딩 플랫폼을 활용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본다던지, 캐릭터를 따라 그려본다던지의 방법으로 아이의 순수한 열정 그 자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아이가 완성해낸 결과물을 칭찬하고 꾸준한 노력 그 자체를 응원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던 아이가 집중해서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그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부모의 명확한 해법 제시보다 부족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탐색하고 선택하며, 실수하더라도 그 실수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를 믿고 응원하고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2단계: 아이가 새로운 기회를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하세요.

대부분의 게임 개발 꿈나무들은 스스로의 큰 열망으로 이미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때부터 게임 제작에 대한 시도를 하기 마련입니다. 자녀가 게임 개발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코딩 수업 혹은 중학교 때 여러 지자체 혹은 커뮤니티들의 오프라인 게임 교육 과정 등에 직접 참여해보거나 2D 또는 3D 코딩 플랫폼을 통해 게임 개발 과정을 경험하고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데.. 코딩을 꼭 배워야하나요?” 라는 질문에는 “훌륭한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함께 일하는 다른 파트 즉 다른 직군의 업무에 대한 기초 소양 및 관련 지식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라는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3단계: 아이의 활동을 구체화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 쌓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이가 게임을 꾸준히 즐기고 온라인에서 타인과 협동/경쟁하며 어려운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도 대단한 노력이고 활동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PC와 스마트 폰에만 매달려있는 자신의 아이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자녀가 게임 개발자를 꿈꾸고 있다면 아이의 지금 그 활동이 먼 미래의 자산(개발 지식)으로 연결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오늘 클리어한 보스 몬스터의 공격 패턴 혹은 공략 방법을 정리해본다던지? 나아가 새로운 퀘스트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정리해본다던지(스토리, 지역 크기, NPC 위치, 이벤트 및 몬스터, 아이템의 종류) 이런 분석과 정리의 노력 자체가 바로 게임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역기획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트의 경우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따라 그리는 모작 등으로부터 활동이 시작되겠지만 현업에서의 그래픽 실무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쁜 그림(일러스트)만 그리는 것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게임에서 실제 동작 될 수 있는 리소스를 구성해보는 것이 중요하므로 코딩 플랫폼 등을 통해 캐릭터의 구성과 동작을 이해하고 맵핑 등 간단한 실제 리소스 작업을 해보거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제작 툴로 콘텐츠와 월드를 직접 만들어보며 게임 리소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갈 수 있습니다.

포토샵, 블렌더 등 2D, 3D 그래픽 툴에 대한 활용도를 높여나가는 것과 함께 게임마당 등의 무료 리소스 제공 사이트를 통해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 스타일의 아트 어셋을 분석해보고 캐릭터 혹은 배경을 구성하는 전체적인 리소스의 구조를 파악해보면서 게임 그래픽 리소스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아트의 기본기와 퀄리티를 높일 수 있도록 매일 꾸준한 컨셉 드로잉(인체데생)과 색채학, 조명, 애니메이션, 카메라 등 예술 및 영화 관련 관련 배경 지식을 함께 갖춰나가는 것도 기본입니다.

기획자 지망생이라면 꾸준히 쌓인 분석 및 기획 노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획 아이디어도 제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하게 될 것이고, 개선 및 제안이 담긴 구체적인 노력의 결과물들은 향후 게임 회사의 기획자 인턴 혹은 신입으로 취직하는데에도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단계: 미래 직업을 꿈꾸며 깊이 있는 지식으로 이어지도록 꾸준히 준비하세요.

취업의 핵심은 학생 스스로가 목표 직군에 대한 꾸준한 지식 습득과 작업을 통해 실무 능력을 갖추고 그 결과물이 본인의 업무 능력에 대한 명확한 증빙(실무 포트폴리오)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장르 게임에 대한 꾸준한 플레이 그리고 분석과 제작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노력들이 함께 더해지면 게임 제작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는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들어주게 되므로 향후 게임 제작자로서의 소양과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는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르 게임을 누구보다 더 깊게 플레이해서 모든 구조적 재미를 이해하는 것도 내세울 수 있는 지식이 될 것이며, 비슷한 장르 게임들을 많이 플레이해보면서 콘텐츠 구성의 차이를 정리하고 개선안을 만들어보는 구체적인 노력들도 미래에 게임 개발로 이어지는 중요 기반 지식이 됩니다.

때문에 제작으로 진로를 정한 학생이라면 기획이건 아트건 프로그래밍이건 분야와 상관없이 장르 게임의 다양한 플레이 구성 요소 및 구조를 이해 및 분석하며 플레이해보길 권유합니다. 음식을 그냥 맛보는 것과 만들어보기 위해 ‘어떤 재료로’, ‘어떤 조리법으로’, ‘어떤 데코레이션으로’ 분석하며 먹어보는 것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게임을 즐길 때에도 본인이 지망하는 분야 별로 각 제작 및 구성 요소 등을 꼼꼼히 파악하고 분석하여 단순히 재미로 즐기는 것 그 이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단계: 신뢰할 수 있는 검증된 네트웍 안에서 교류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세요.

게임 현업의 전문가를 만날 수 있는 강연회(세미나)에 참가한다던지, 지역 청소년센터 등의 단기 교육 과정 혹은 캠프를 통해 같은 진로를 꿈꾸는 열정으로 가득 찬 친구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학생 스스로 게임개발자가 되기 위한 꿈을 보다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고민 2: 우리 아이가 게임 쪽 직무를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해왔어요. 어떤 학과를 가면 좋을까요?

IT관련 특성화고 혹은 대학의 게임학과를 입학하게 된다면 학교를 통해 관련 지식을 쌓고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경험해보며 현업 입사를 위한 기본기 습득 및 나름의 실전 대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커뮤니티에 속한 자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소통하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게 되므로 장차 더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게임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최초 출발점이 됩니다.

다만, 게임 학과에 입학하여 게임 업계 출신의 교수님들을 통해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게임 학과 학생들의 수준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대일 맞춤 교육을 하기 어려운 대학의 특성상 나름의 학업 및 진로 고민을 가지게 될 것이고, 졸업 시즌 이후 입사를 위한 포트폴리오 고도화에도 한계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일부 업계 지망생들은 졸업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이후 학원을 통해 추가적인 입사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거나 게임잼 혹은 인디팀 결성을 통해서 프로젝트 경험과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던, 대학이던 게임 진로의 핵심은 취업만을 위한 단편적이고 정형화된 맞춤형 포트폴리오 고도화가 아닌 기본기+실무능력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모든 노력은 투입한 절대 시간(매일의 작업시간)에 비례하여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이의 구체적인 노력을 눈에 보이도록 정리하고 기초 지식과 기본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세요. 어떤 영역이던 자세가 핵심이고 기본기가 잘 잡힌 학생이라면 올바른 커뮤니티 안에서 폭풍처럼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만 화려한, 결과물에만 치중된, 기본기 없이 습득된 잔재주로는 결코 인정받는 개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게임 개발자를 꿈꾸며 오늘 하루도 열정적으로 보내고 있는, 한국 게임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일 한국의 게임 개발 꿈나무, 당신을 응원합니다!

글: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1999년 (사)한국게임개발자협회를 설립 후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KGC 국제 콘퍼런스를 조직하는 등 국내 게임 제작 문화 확산 및 정착에 공을 들여왔으며, 더불어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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