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문학의 거장 황석영 작가가 신작 소설 『할매』 집필 과정에서 ChatGPT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문단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80대 노장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기술을 창작 도구로 받아들였다는 점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우리 시대 창작 방법론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1. 황석영 작가의 ChatGPT 활용: 구체적 방법론
황 작가는 유튜브 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의 창작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그가 ChatGPT에 입력한 것은 소설의 핵심 요소들이었다. 600년 된 팽나무라는 상징적 오브제, 시대적 배경, 전체적인 구성 방법 등 대여섯 가지 핵심 설정을 AI에게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사의 뼈대를 구축했다.
1.1 단계별 활용 전략
황 작가는 창작 과정을 명확히 두 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 밑그림 작업 (ChatGPT 집중 활용)
이 단계에서 AI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역할을 수행했다:
- 서사 구조 설계: 600년 팽나무를 중심으로 한 시간 구조, 인물 배치, 사건 전개 방식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제안받음
- 역사적 고증: 특정 시대의 생활상, 언어, 풍습, 사회 제도 등에 대한 방대한 정보 수집
- 개연성 검토: 설정한 배경과 사건 전개의 논리적 일관성을 점검하고 허점 발견
- 다양한 관점 제시: 작가 혼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구성 방법이나 전개 가능성 탐색
2단계: 색칠 작업 (작가 고유 영역)
- 실제 문장 집필
- 작가 고유의 문체 구현
- 감성과 철학적 깊이 부여
- 언어적 뉘앙스와 리듬 완성
황 작가는 “AI는 아주 영리한 비서와 같다”고 표현했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 예상치 못한 구조를 제안하기도 하고, 내가 놓쳤던 시대적 고증을 도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2. ChatGPT 창작 활용의 구체적 효용성
그럼 이제부터 황석영 작가의 사례를 통해 확인 가능한 ChatGPT의 창작 지원 기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1 브레인스토밍 파트너로서의 활용
창작 초기 단계의 어려움
많은 작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은 “백지 상태”다. 막연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를 구체적인 서사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막힌다. 혼자 고민하다 보면:
-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돈다
-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새로운 관점을 찾기 힘들다
ChatGPT와의 대화를 통한 돌파
황석영 작가의 경우, “600년 된 팽나무”라는 소재를 놓고 ChatGPT와 대화하며:
"이 나무가 600년 동안 지켜본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한다면 어떤 구조가 가능할까?"
"나무를 화자로 설정하는 것과 관찰자로만 두는 것,
각각의 장단점은?"
"시간 순행과 역행, 혹은 교차 구성 중 어떤 것이
이 소재에 더 효과적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답변을 들으며, 작가는:
-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성 방법 발견
- 각 방법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비교
- 최종 선택의 근거를 명확히 정립할 수 있다.
2.2 다양한 관점과 가능성의 탐색
작가의 시야 확장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선호하는 서사 패턴을 갖고 있다. 이는 강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ChatGPT는 특정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시 1: 인물 설정
작가: "600년 된 나무 아래서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ChatGPT:
1) 각 세대가 같은 나이(예: 모두 30세)일 때의 이야기로 구성
→ 시대적 차이 속 여성의 삶 변화 부각
2) 할머니-어머니-딸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구조
→ 세대 간 갈등과 이해 중심
3) 각 인물이 인생의 다른 시점(청년-중년-노년)에서 나무를 만남
→ 인생 단계별 성찰 중심
이러한 선택지들을 검토하며 작가는 자신의 주제 의식에 가장 부합하는 구조를 선택할 수 있다.
예시 2: 서사 전개
작가: "나무가 잘릴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쓰고 싶은데,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까?"
ChatGPT:
1) 개발 사업과 보존 운동의 충돌 (현대적 갈등)
2) 전쟁 중 군사적 목적으로 벌목 위기 (역사적 배경)
3) 자연재해로 인한 위기 (운명적 요소)
4) 나무에 얽힌 미신을 둘러싼 마을 공동체 내부 갈등
작가는 이 중 자신의 서사와 가장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옵션을 선택하거나, 여러 요소를 결합한 새로운 전개를 창안할 수 있다.
2.3 리서치와 고증 지원
역사 소설의 현실적 과제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때, 작가는 해당 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의복, 음식, 건축, 사회 제도, 언어 표현 등의 디테일이 잘못되면 독자의 몰입을 깨뜨린다.
ChatGPT를 통한 초기 리서치
작가의 질문: "조선시대 양반가의 혼례 절차를 시간 순서대로 설명해줘.
특히 신부가 신랑 집에 도착한 후부터 초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ChatGPT의 답변: [상세한 절차, 사용되는 용어, 의례의 의미,
시대별 차이점까지 종합적으로 제공]
물론 이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더 깊이 파고들 부분을 선별하고, 전문 서적으로 재확인하며, 소설적 각색의 방향을 결정하는 후속 작업으로 이어진다.
2.4 일관성과 개연성 점검
복잡한 서사 관리
장편 소설을 쓸 때 작가들이 직면하는 실질적 문제 중 하나는 일관성 유지다:
- 인물의 나이, 거주지, 직업 등의 기본 설정
- 시간 순서와 역사적 사실의 정합성
- 인물 간 관계와 사건의 인과관계
- 복선과 그 회수
ChatGPT를 통한 체계적 점검
작가: "내가 설정한 인물과 사건 연표를 정리해줄 수 있어?"
[ChatGPT에게 지금까지 쓴 내용의 핵심 정보 입력]
ChatGPT:
- 시간순 정리된 연표 생성
- 인물별 주요 사건 정리
- 발견된 불일치 지점 지적
"1920년에 태어난 인물이 1915년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서사의 허점을 조기에 발견하고, 수정 방향을 명확히 설정할 수 있다.
2.5 대화를 통한 아이디어 구체화
모호한 영감의 구체화 과정
창작의 시작은 종종 매우 모호하다. “뭔가 쓰고 싶은데, 정확히 뭘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상태. ChatGPT와의 대화는 이런 막연함을 구체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 대화 흐름 예시
작가: "오래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ChatGPT: "나무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면 몇 가지 방향이 가능합니다.
나무 자체가 주인공인가요, 아니면 나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인가요?"
작가: "나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특히 여성들."
ChatGPT: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단일 시대인가요, 여러 시대를 아우르나요?"
작가: "여러 시대. 나무가 오래됐으니까."
ChatGPT: "그렇다면 각 시대의 여성 인물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를 둘 건가요?
혈연 관계, 공간적 연결, 상징적 연결 등 여러 방식이 있는데..."
작가: "혈연! 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면서 작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점점 더 선명하게 만들어간다. 마치 거울에 비춰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 해 나가는 것과 같다.
3. 해외 사례: AI와 문학의 만남
황석영 작가의 사례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도 주목할 만한 실험들이 진행되어 왔다.
3.1 구단 리에 –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의 AI 활용
일본 문학계를 뒤흔든 고백
2024년,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구단 리에(九段理江, Rie Kudan)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소설 『도쿄도 동정탑(東京都同情塔)』의 전체 분량 중 약 5% 정도는 ChatGPT가 생성한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발언은 일본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수상작에 AI가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찬반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구체적 활용 방식
구단 리에 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 AI 캐릭터의 대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캐릭터의 대사를 ChatGPT에게 직접 생성하도록 함
- 기술적 설명: AI나 미래 기술에 관한 설명 부분에서 ChatGPT의 텍스트를 활용
- 특정 어투나 말투: 특별한 말투나 문체가 필요한 부분에서 AI의 도움을 받음
작가는 “AI 캐릭터가 AI가 쓴 대사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작품의 진정성을 높인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황석영 사례와의 비교
두 작가의 접근법에는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 구분 | 황석영 | 구단 리에 |
|---|---|---|
| 활용 단계 | 주로 구상·구조 단계 | 실제 문장 단계 포함 |
| 텍스트 사용 | AI 문장 직접 사용 안 함 | 5% 정도 직접 사용 |
| 활용 목적 | 아이디어 확장, 리서치 | 특정 캐릭터의 진정성 |
| AI 역할 | 조력자, 대화 상대 | 부분적 공동 저자 |
4. ChatGPT 활용의 한계 그리고 작가의 역할
4.1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작가적 영역들
- 작가 고유의 문체와 목소리(톤)
- 폭넓은 세대적 깊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 통찰과 철학
-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과 아우라
- 긴 기다림 속 찰나의 감동을 잡아내어 묘사하는 순발력
-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와 리듬
- 한땀 한땀 담아내고 조각된 생동감 넘치는 시각적 디테일 및 화면 묘사의 미학
- 독자의 감성을 깊숙이 건드리는 묵직한 감동과 장인 정신으로 우려낸 전문성
(출처: AI시대 콘텐츠 창작, 생존의 길 – 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정무식 교수 강연 中)
결론: 새로운 시대, 다양한 길
황석영과 구단 리에, 두 작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AI를 창작에 활용했다. 한 사람은 밑그림 단계에서만, 다른 사람은 최종 텍스트에까지.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창작 철학에 맞게 AI를 활용했고, 투명하게 그 사실을 공개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감 있게 작품을 완성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AI 시대의 창작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길을 스스로 찾아 가는 것
- 황석영 작가처럼 AI를 대화 상대로만 활용할 수도 있고
- 구단 리에처럼 부분적으로 AI 텍스트를 사용할 수도 있으며
- AI에게 창작의 전권을 맡기거나
- 반대로 AI를 완전히 배제하고 한땀 한땀 만들어가는 노력을 통해 오가닉 글쓰기(순수 창작)의 가치를 극대화 할 수도 있다.
핵심은 ‘창작’의 본질을 지켜나가는 것
- 어떤 방식을 택하든,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그리고 문학 본연의 가치 전달을 최우선으로
- 결국은 글을 읽는 독자에게 감동과 통찰을 주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 기술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AI를 활용하는 지혜
-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정직하게,
- 문학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 미래 세대를 위한, 건강한 선례를 남기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황석영 작가는 80대에도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이며 “거장조차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구단 리에는 젊은 작가로서 AI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세대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본질적 목표는 같았다.
AI는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창작자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도구에 휘둘리지 않고,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결국 문학의 미래는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왜 쓰느냐”에 달려 있다. 황석영과 구단 리에의 실험은 그 다양한 가능성의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