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알파고의 충격을 넘어, AI가 ‘일상’이 된 아이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던진 충격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인공지능(AI)과 로봇은 분석과 예측, 나아가 인간의 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하는 현실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AI 혁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견인해 온 산업이 바로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AI 반도체를 이끄는 엔비디아(NVIDIA)의 출발점이 게임용 그래픽카드였고, 오늘날 코딩·그래픽·사운드·스토리 생성 등 모든 생성형 AI 기술이 총집결하는 최전선 역시 게임이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기기와 AI, 게임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산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책만 읽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없는 시대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게임문화교육원 유아 게임리터러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대담에서 정무식 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교수와 최명희 신구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입을 모아 “디지털과 게임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사고하고 창작하는 주체적인 도구로 삼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전문가의 통찰을 통해 AI 시대 우리 아이를 위한 디지털·게임 리터러시의 5가지 핵심 원칙을 짚어본다.
▶ 유튜브에서 대담 영상 보기[유아 게임리터러시] AI 시대, 디지털 세상과 게임의 접목 — 우리 아이가 살아갈 AI 세상, 게임으로 창의력과 디지털 역량 기르기
지금 아이들의 디지털 환경, 숫자로 보면
올해 3월 발표된 「2025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서 전체 이용자의 과의존 위험군은 22.7%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유아동(만 3~9세)은 26.0%로 3년째 조금씩 오르고 있다.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세계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2~4세는 화면 하루 1시간 이내’처럼 시간을 기준으로 제시했다면, 미국소아과학회(AAP)는 2026년 1월 미디어 지침을 전면 교체하면서 시간보다 어떤 콘텐츠를,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쓰느냐로 무게를 옮겼다. 가정에만 책임을 지우지 말고 플랫폼과 정책도 아이에게 맞게 설계해야 한다는 주문도 담겼다. 유니세프는 2025년 12월 개정한 ‘AI와 아동 지침 3.0’에서 아이를 AI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함께 아이에게 AI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을 요건으로 꼽았다. 금지와 방임 사이, 두 전문가가 말하는 ‘주체적인 사용’과 같은 방향이다.

1. 단순 소비에서 ‘창작과 문제 해결의 주체’로
많은 부모가 스마트 패드를 쥐어주면 아이가 수동적인 미디어 소비자에 머물 것이라 우려한다. 하지만 유아교육 현장의 모습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유치원의 7세 학급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이 팽이 돌리기 시합을 하다가 ‘누가 더 오래, 더 긴 경로로 돌았는가’를 두고 판정 시비가 붙었다. 교사의 심판만으로는 납득하지 못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어 아이패드로 시합 영상을 촬영해 판독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전날의 기록과 비교하기 위해 학급 유튜브 계정에 영상을 업로드하고, 이를 QR 코드 스티커로 만들어 집으로 가져가 부모와 함께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디지털 소양(Digital Literacy)’이다.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비자가 아니라, 실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고 놀이·공간·시간·관계를 확장하는 도구로 디지털을 활용하는 것이다. 게임과 AI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보고, 배포해 보고, 때로는 실패도 경험해 보는 ‘창작의 주도성’을 기르는 것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다.
2. ‘놀이의 무한 확장판’인 게임, 교실의 변화를 양지로 끌어내야
아동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그리고 게임은 그 놀이의 무한한 확장판이다. 도화지와 물감을 세팅하고 뒷정리를 해야 하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태블릿 하나와 콘솔 게임기만으로 아이들은 우주를 탐험하고 직업을 체험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가상의 세계로 연결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며 규칙(Rule)을 익히고, 전략을 세우고, 승패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아이의 발달에 필수적인 ‘자기효능감’이 자라난다.
실제로 유아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디지털 도구를 ‘배워야 할 낯선 기계’가 아니라 ‘익숙한 친구’로 여긴다. 이미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지은 동화에 게임적 요소를 결합해 전자책(e-book)으로 출판하거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AI 앱으로 영상화하고 코딩 로봇을 움직이는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소개한 ‘2025 유아 게임리터러시’ 우수 수업에서도 아이들은 게임 규칙을 노래와 미션 카드로 익혀 자기 말로 설명하고, 짝과 태블릿 퍼즐을 하며 순서를 정하고 서로 응원하는 말을 약속했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경험이 수업의 핵심이었다. 이제는 유아기의 게임과 AI 활용을 금기시하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 양지로 투명하게 드러내어 그 교육적 가치를 학문적·실천적으로 깊이 탐구해야 할 때다.
3. 통제보다 무서운 것은 ‘폄하’… 인지와 정서를 잇는 ‘공감 교육’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 세대다. 부모가 기술과 게임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조건 통제하거나 아이가 몰입하는 디지털 활동을 하찮게 폄하하는 태도는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아이들이 게임이나 AI 앱에 몰입하는 이유는 그 안에 ‘인지적 자극’과 ‘정서적 즐거움’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머리 아프게 어렵기만 해도, 반대로 생각 없이 재미있기만 해도 진정한 몰입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도 인지와 정서 두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 인지적 지원 (질문하기): “그만해”라고 통제하는 대신, “오늘 게임에서 어떤 점이 제일 재미있었어?”, “이건 어떻게 해결했어?”라고 질문을 던져 아이가 자신의 놀이 경험을 스스로 탐색하고 언어로 정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 정서적 지원 (공감하기): 게임에서 져서 속상해하거나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기뻐할 때, “그깟 게임 가지고 왜 그래?!”라며 감정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기뻐하거나 아쉬워해 주는 ‘공감 교육’이 이루어질 때 정서적 안정감이 형성된다.
부모에게 감정을 공감받은 아이가 정서적 안정감을 얻고, 바로 그 토대 위에서 부모들이 그토록 원하는 인지 발달과 학습 집중력도 비로소 꽃을 피운다.
4. AI 친구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이유: 미래 인재의 끝판왕은 ‘인간다움’
생성형 AI와 음성 대화형 챗봇이 보편화되면서 아이들은 AI를 친구처럼 대하며 자란다. 이때 많은 부모가 ‘과몰입’이나 ‘사회성 결여’를 걱정한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 가정 내에서 일관된 규칙과 긍정적인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마치 반려동물을 키울 때 가족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 것과 같다. 상대가 기계인 AI 챗봇이든, 온라인 게임 속 익명의 플레이어든 무례하게 명령하거나 폭력적인 언어를 쓰지 않도록 가정 내 ‘디지털 언어 예절’을 세워야 한다.
한 가지 더 살펴야 할 것이 있다. 최근 말을 걸고 대답하는 AI 장난감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미디어 평가 기관 커먼센스미디어는 2026년 1월 위험 평가에서 AI 장난감 출력의 27%가 아이에게 부적절하다고 하며, 만 5세 이하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목소리와 대화 기록을 수집하고, ‘너만의 친구’처럼 정서적 애착을 만들도록 설계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AI를 친구처럼 대하는 예절은 가르치되, 아이의 친구 자리를 기계에 내주지는 말자.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틀이자 인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AI와 로봇이 많은 기능을 대체할 미래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대체 불가능한 가치는 결국 ‘인간다움(인성)’이다. 부모가 먼저 디지털 도구를 대할 때 예의를 갖추고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 줄 때, 아이 역시 인터랙티브(상호작용) 매체인 게임과 타인을 존중하는 건강한 주체로 성장한다.
5. ‘디지털 감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대화법
어르신들이 매장 키오스크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지금 부모 세대가 AI와 새로운 게임 문화를 외면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역시 똑같은 디지털 소외를 겪게 될지 모른다. 다문화 시대에 다문화 감수성이 필요하듯, 빠른 변화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아이와 함께 체험하려는 부모의 ‘디지털 감수성’이 절실하다.
생활 속에서 아이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 생산자로 키우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대화법’이 필요하다.

- 질문 전 생각하기: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무조건 AI에게 바로 답을 구하기보다, “우리 먼저 왜 그럴지 한 번 생각해 볼까?”라며 스스로 사고 회로를 돌릴 시간을 준다.
- 배운 것 나누기: AI나 온라인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는 반드시 부모나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인다.
- 함께 확인하기: 그림책이나 다른 자료에서도 같은지 함께 찾아본다. 기계가 내놓은 답을 맹신하지 않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비판적 사고력’은 여기서 출발한다.
에필로그: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를 위하여
누구나 AI를 활용해 손쉽게 게임을 만들고 콘텐츠를 창작하는 시대가 열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처럼, 디지털 세상에서의 창작 윤리와 정보 안전 기준 역시 유아기부터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어야 한다.

AI 중심 시대, 이제 어른들의 역할은 정해진 트랙을 강요하면서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디지털과 게임이라는 거대한 도구 상자를 마음껏 열어보고 창작의 주체로 뛰어놀 수 있도록, 든든한 안전장치와 따뜻한 공감의 울타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의 화면을 빼앗는 대신,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아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와~ 오늘 만든 것도 정말 멋지다! 근데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글(기획/감수):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2003년 인디게임공모전을 최초로 기획, 개최한 이후로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으며, 성남산업진흥원 선임 이사,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능성 게임, 게임 리터러시 등의 자문을 맡아 국내 게임 문화 정착과 확산에 앞장서 왔다.

참고 자료
- 머니투데이 — 과기정통부·NIA 「2025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2026.03.27)
- 뉴시스 — 「2024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2025.03.27)
-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 Calls for Creating a Child-Friendly Digital World (2026.01)
- KFF Health News — WHO guidelines on screen time for children under 5 (2019)
- UNICEF Innocenti — Guidance on AI and Children 3.0 (2025.12)
- Common Sense Media — Warns Against AI Toy Companions (2026.01.22)
- 대학저널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유아 게임리터러시’ 수업형 교육 우수 사례 (2026.01.07)
- 대담 영상 — [유아 게임리터러시] AI시대, 디지털 세상과 게임의 접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