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매장을 가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거실에서는 AI 스피커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아직 말을 채 떼지도 못한 영유아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능숙하게 넘기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진보를 무조건 숨기거나 억압하려는 시도는 늘 더 큰 부작용을 낳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또래 집단을 통해 무분별하게 미디어를 접하기 전, 오히려 부모의 따뜻한 품 안에 있는 유아기야말로 디지털과 게임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을 어떻게 고르고, 가장 큰 고민거리인 ‘사용 시간’은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한국콘텐츠진흥원·게임문화교육원 유아 게임리터러시 교육 대담에서 정무식 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교수와 최명희 신구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가 나눈 실전 노하우를 통해, 부모가 당장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지혜로운 디지털·게임 활용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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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이에 맞게: 24개월 전에는 화면을 미루자
아래 네 가지 실천법은 주로 5~7세 유아를 위한 것이다. 그보다 어린 영아기에는 원칙이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세 미만은 화면 노출 없이, 2~4세는 앉아서 화면을 보는 시간을 하루 1시간 이내로 권고한다. 올해 6월 영국 리즈대·러프버러대 등 공동 연구진은 “교육용이라도 2세 미만에게는 화면을 보여 주지 말라”며 기존 지침을 더 엄격히 볼 것을 촉구했다. 화면이 수면, 몸놀이, 보호자와 눈을 맞추며 말을 주고받는 시간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진은 이른 노출과 발달 지표 사이의 연관을 보고하면서도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1. 부모의 ‘유능한 모델링’과 몰입의 죄책감을 지우는 3단계 확장법
유아기에는 직접 몸을 움직이고 사물을 만지는 신체 놀이와 디지털 놀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이때 백 마디 잔소리보다 강력한 것은 부모의 ‘모델링(모범)’이다. 부모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AI를 ‘유능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 아이와 무엇을 할지 막막할 때, “우리 집에 있는 물건으로 할 수 있는 놀이가 뭘까?”, “오늘 날씨에 우리 동네에서 갈 만한 곳은 어디일까?”AI에게 물어보며 실생활의 힌트를 얻는 과정을 아이와 공유하는 것이다.
또한 아이가 AI 대화형 앱이나 인터랙티브 게임에 몰입할 때, 이를 단순한 ‘시간 때우기’로 방치하지 않으려면 가정 내 3단계 확장 전략이 필요하다.

- 1단계 (공감으로 죄책감 덜어주기): 아이 혼자 기기를 보게 두지 않고 부모가 옆에서 함께 즐거움을 경험한다. 부모가 나를 감시·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존재라고 느낄 때, 아이는 자신의 ‘몰입 경험’에 대해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된다.
- 2단계 (현실 놀이로의 이동): “30분 지났으니 꺼!”라고 시간으로만 자르는 대신, 앱이나 게임에서 경험한 캐릭터를 종이에 직접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블록으로 만들어보게 유도하여 가상 세계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현실 공간의 놀이로 이동시킨다.
- 3단계 (학습과 창작의 통로로 연결): 단순 시청을 넘어 질문을 주고받는 대화형 AI, 탐구형 퀴즈, 유아용 창작 앱 등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한 단계씩 확장해 준다.
2. ‘좋은 우유’ 같은 게임 고르기: 어린이집·유치원 교사에게 물어보라
모든 콘텐츠에는 제작자의 철학과 감성이 스며든다. 깨끗한 물과 공기에서 자란 젖소에게서 좋은 우유가 나오듯, 상업적 수익 이전에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겠다’는 명확한 기획 의도를 가진 앱과 게임을 선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자극적인 인앱 광고가 수시로 뜨는 무료 모바일 게임이나 조작이 복잡한 PC 게임보다는, 검증된 패키지 형태의 콘솔 게임이나 태블릿 교육 앱이 유아에게 훨씬 적합하다. 예를 들어 닌텐도 스위치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처럼 서사가 있는 공간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낚시를 하며 박물관에 전시하는 게임, 혹은 온 가족이 몸을 쓰며 협동하는 『슈퍼 마리오 파티』 시리즈(최신작 『슈퍼 마리오 파티 잼버리』) 같은 타이틀은 부모와 아이가 어려운 조작과 쉬운 조작의 역할을 분담하며 협동심을 기르기에 훌륭한 도구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올해 1월 스위치 2 에디션과 무료 업데이트가 나와 지금 시작하기에도 좋다.
모바일에서는 『토도수학』이나 네이버가 4~7세 대상으로 내놓은 『쥬니버스쿨』 같은 유아용 학습 앱을 활용할 수 있다. 교실 퀴즈 도구로 알려진 『카훗(Kahoot!)』은 원래 학령기 이상을 위한 서비스라, 유아에게는 같은 회사의 어린이용 앱인 『Kahoot! Kids』가 맞다. 구글 플레이의 ‘어린이’ 탭에 붙는 ‘교사 승인(Teacher Approved)’ 표시도 참고할 만하지만, 미국 교사·전문가의 평가 기준이어서 국내 스토어에서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수많은 앱 중에서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면 가장 좋은 팁이 있다. 바로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최근 유아교육 기관에서는 발음이 미숙한 유아의 말까지 알아듣는 애착 인형 형태의 AI 로봇이나 코딩·게임형 프로그램을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선생님, 원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지털 교구나 앱이 있나요?”라고 물어보고 이를 가정에서도 연계해 활용하면, 아이는 집에서 겪은 경험을 다시 원에 가서 친구들과 공유하며 사회성까지 확장하게 된다.

다만 원에서 교사가 함께 쓰는 AI 로봇과, 아이 방에서 혼자 대화하는 AI 장난감은 다르다. 미국의 미디어 평가 기관 커먼센스미디어는 올해 1월 AI 장난감 출력의 27%가 아이에게 부적절했다며 만 5세 이하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집에 들일 때는 대화 기록을 어디에 저장하는지, 아이에게 ‘너만의 친구’ 같은 애착을 유도하지 않는지 먼저 확인하자.
3. “20분만 해!”가 통하지 않는 이유… 시간을 눈에 보이는 ‘토큰’으로 바꿔라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역시 ‘과몰입 조절’이다. 게임은 본래 인간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보상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성인조차 조절하기 어렵다. 특히 24개월 이전 영아기의 미디어 노출은 가급적 지양해야 하며, 자기주장과 고집이 생기는 5~7세 유아기에는 어른의 방식이 아닌 ‘유아의 눈높이’에 맞춘 조절 훈련이 필요하다.
어른들에게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10분, 20분’은 명확한 약속이지만, 5~6세 유아에게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시간을 아이가 만지고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사물로 ‘형상화(시각화)’해 주어야 한다.
대담에서는 실제 상담 현장에서 큰 효과를 본 ‘시간 토큰(Token) 놀이’를 추천했다.

- 바둑알이나 예쁜 모양의 칩(토큰) 하나를 ‘10분’으로 정한다.
- 아이가 책을 읽거나 방에서 신체 놀이를 할 때마다 보상으로 토큰을 준다.
- 게임을 하고 싶을 때는 자신이 모은 토큰을 부모에게 직접 지불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사용한다.
놀라운 점은 시간을 물리적인 토큰으로 바꾸자, 아이들이 단순히 게임을 빨리하려고 떼를 쓰는 대신 ‘토큰을 모으고 아끼는 과정’ 자체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은 토큰이 아까워서 게임을 스스로 줄이는 경제 개념까지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통제와 억압이 아닌, 구체적인 사물을 통한 ‘자기조절 놀이’로 전환하는 지혜다. 모래시계나 남은 시간이 색으로 줄어드는 시각 타이머를 함께 쓰면 효과가 더 좋다.
약속을 지키도록 돕는 장치도 미리 켜 두자. 스마트폰·태블릿의 자녀 보호 기능, 게임기의 자녀 보호 앱, 구매 시 비밀번호 설정이 기본이다. 보호자가 게임 이용 시간대를 정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도 있지만, 모바일 게임과 해외 게임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두자.

4. 학원 고르기보다 신중해야 할 한 가지 원칙: ‘우리 아이 중심’
마지막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모의 욕심’이다. 아이가 디지털 교구나 코딩 게임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면, 부모는 금세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라는 기대감에 휩싸여 더 어려운 단계, 더 새로운 학습형 앱을 강요하곤 한다.
하지만 디지털·게임 리터러시의 중심, 즉 시작과 끝은 유명 강사의 추천도, 부모의 교육열도 아닌 ‘우리 아이’여야 한다. 영아기 아이가 똑같은 까꿍 놀이를 통해서 성장하듯, 아이가 특정 게임이나 활동에서 굳이 새로운 자극을 강요하거나 밀어 넣지 말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탐색해 나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좋다.

- 이야기와 감성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그림책의 주인공이 되는 스토리형 게임을,
- 호기심과 탐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동물·과학·수학 탐색형 앱을,
- 만들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6~7세 아이에게는 블록 코딩 프로그램을 건네면 된다.
그리고 아이가 즐겁게 몰입하고 난 뒤에는 “어느 학원에 보낼까”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신중하게 아이의 반응을 관찰하며 질문을 던져 보자. “오늘은 어떤 점이 너를 그렇게 기쁘게 했니?”, “어떤 부분은 조금 재미없었어?”
그 질문 속에서 아이는 단순히 화면을 따라가는 수동적 관람객을 넘어, 자신이 즐기는 놀이의 진짜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글(기획/감수): 정무식 교수(가천대학교 게임영상학과 부교수/공학박사)
정무식 교수는?
1994년 트리거소프트 창업 멤버로 출발하여 엔씨소프트 디렉터,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사외이사 및 루노소프트의 부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다. 2003년 인디게임공모전을 최초로 기획, 개최한 이후로 국내 인디게임 육성에 오랜 관심과 지원을 이어왔으며, 성남산업진흥원 선임 이사,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능성 게임, 게임 리터러시 등의 자문을 맡아 국내 게임 문화 정착과 확산에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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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KFF Health News — WHO guidelines on screen time for children under 5 (2019)
- 아시아경제 — “아이가 울어도 보여주지 마세요”…2세 미만 경고 나온 이유 (2026.07.01)
-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 Calls for Creating a Child-Friendly Digital World (2026.01)
- Common Sense Media — Warns Against AI Toy Companions (2026.01.22)
- Gematsu — Animal Crossing: New Horizons 3.0 update and Switch 2 Edition (2025.10)
- 데일리안 — 네이버, 4~7세 유아 AI·SW 학습 플랫폼 ‘쥬니버스쿨’ 출시
- Kahoot! Kids
- Google Play 고객센터 — 가족 친화 콘텐츠 찾기(Teacher Approved)
- 문화체육관광부 — 게임시간 선택제
- 한국닌텐도 — Nintendo Switch 자녀 보호 기능
- 대담 영상 — AI시대, 유아를 위한 디지털 교구와 게임의 지혜로운 활용법